‘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도입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려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SK케미칼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시점은 2019년이다. SK케미칼은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오픈 R&D 팀을 구성했다. 이 팀은 사업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평가하고, 시장 가능성을 살폈다.

SK케미칼이 TF의 성과를 살핀 기간은 약 2년이다. 사업적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한 회사는 지난 1월 오픈 R&D TF를 ‘오픈이노베이션팀’으로 확대했다. 오픈이노베이션팀이 정규 조직으로 편성되면서 전담 인력이 상시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이들은 △신약개발 △AI △투자·파트너링 등 3가지 영역에서 회사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올해 오픈이노베이션팀을 정규 조직화한 배경에 대해 “2019년부터 진행한 협업을 통한 신약 후보물질 탐색에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는 시점”이라며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수와 추가적인 혁신 신약 개발 기회 창출을 위해 전담 조직이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SK케미칼의 오픈이노베이션 핵심은 ‘AI’
SK케미칼이 도입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핵심은 AI다.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라 AI 기술 정확도는 높아지고 있다. 이를 신약 발굴 분야에 활용해 신약 발굴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낮추겠단 청사진을 그렸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선 통상적으로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데 약 5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8000억원 남짓이다. 이렇게 찾은 신약 후보물질이 상용화될 확률은 10% 안팎에 그친다.

신약 발굴은 개발 과정 중 기술이 유출된다면 타격이 극심하다. 이에 따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그간 폐쇄적인 기조를 유지해왔다. SK케미칼을 이런 기조를 과감히 탈피해 AI기술을 갖춘 다양한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회사 측은 “신약 개발 과정에 AI기술을 접목하면 실험실에서 진행하던 전통적 R&D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폐쇄성 탈피하니 성과도 ‘속속’
SK케미칼이 가장 먼저 협업을 시작한 기업은 스탠다임이다. 2019년 협업을 맺고 신약 후보물질 공동 연구에 착수했다. 스탠다임은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갖춘 기업이다. 여기에 SK케미칼의 노하우를 접목해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는 게 협업의 핵심이다.

양사의 협업 성과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또 스탠다임 플랫폼 ‘인사이트’를 통해 발굴한 비알콜성지방간염 후보물질에 대한 공동 임상도 진행키로 했다. 스탠다임은 지난해 SK케미칼 사옥 내 자체 합성연구소를 개설, 합성 연구를 강화하는 동시에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SK케미칼은 스탠다임뿐 아니라 △닥터노아 △심플렉스 △디어젠 △인세리브로 등 AI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춘 기업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다수의 AI 신약 개발 업체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R&D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며 “각기 다른 특화 영역을 보유한 기업들과 시너지를 내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인세리브로 본사에서 김정훈 SK케미칼 연구개발센터장(왼쪽)과 조은성 인세리브로 대표가 양자 기반 AI를 통한 신약 개발 협업을 체결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SK케미칼)
▲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인세리브로 본사에서 김정훈 SK케미칼 연구개발센터장(왼쪽)과 조은성 인세리브로 대표가 양자 기반 AI를 통한 신약 개발 협업을 체결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SK케미칼)

닥터노아는 △신약 재창출 △복합 신약 분야 등에 특화된 솔루션을 갖춘 기업이다. 단일 약물에 비해 높은 효과를 보이는 최적의 복합제 분석을 위한 ‘콤비넷(CombiNet)’ 기술과 두 약물 간의 부작용을 예측하는 기술인 ‘콤비리스크(CombiRisk)’ 기술 등을 기반으로 SK케미칼과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양사는 올해 초 닥터노아 플랫폼을 통해 발굴한 비알콜성지방간염(NASH)·특발성폐섬유화증(IPF) 신약 후보물질 3종을 특허 출원했다. 1년2개월만의 성과다. 회사 측은 “통상적으로 R&D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가량 줄인 것”이라고 소개했다.

심플렉스와는 지난해 11월부터 협업을 시작했다. 심플렉스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SK케미칼은 신약 탐색의 결과뿐 아니라 도출 과정까지 저장하고 설명하는 기술이라 추적·수정·보완 과정을 통해 빠르게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어젠과는 2020년 제휴를 시작했다. 디어젠은 약물 재창출 분야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단백질-화합물 결합력(DTI) 예측 AI 기술인 ‘DearDTI’를 통해 기존 의약품의 유효물질 또는 물질의 새로운 적응증을 도출하는 식이다. 가장 최근 손을 잡은 인세리브로는 AI 플랫폼에 양자 역학을 접목해 분자 모델링에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했다.

신약 개발 벤처와도 ‘맞손’…“잘하는 분야 협력”
SK케미칼은 AI 분야뿐 아니라 신약 개발 벤처와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J2H바이오텍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J2H바이오텍이 보유한 합성신약 플랫폼 기술인 옵티플렉스(Optiflex)와 표적단백질 분해(Targeted Protein Degrader) 기술 등을 활용해 신약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K케미칼은 J2H바이오텍의 합성 경험과 역량을 활용한다. J2H바이오텍은 △새로운 파이프라인의 공동연구 △자체 파이프라인 개발 등에 SK케미칼의 검증 노하우를 제공받는 게 핵심이다. 회사 관계자는 “각 업체가 가장 ‘잘하는’ 분야를 공유해 양사가 시너지를 내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온코빅스와도 손을 잡았다. 양사는 적합한 치료제가 없거나 미충족 수요가 큰 질환을 중심으로 연구한다는 계획이다. 온코빅스는 혁신신약 개발 플랫폼 기술인 ‘토프오믹스(TOPFOMICS)’를 기반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하고 합성한다. SK케미칼은 도출된 후보물질 검증과 개발, 인허가 등 상용화에 필요한 업무를 맡는다.

SK케미칼은 현재 개발 중인 공동연구 과제에 더해 올해 최소 3곳의 신규 파트너사와 새롭게 공동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다. 공동연구에서 도출된 후보물질의 임상 진입과 라이선스 아웃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화에 대한 업무도 본격화한다.

김정훈 SK케미칼 연구개발센터장은 “오픈 이노베이션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않은 분야라도 외부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더욱 효율적이면서도 폭넓게 R&D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SK케미칼이 신약 개발 분야에서 쌓은 오랜 노하우를 활용해 높은 잠재력을 지닌 바이오 벤처 기업의 기술력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인큐베이터로서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이란?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동시에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전략을 말합니다. 전통적인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그간 폐쇄적이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차세대 성장 전략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지목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학계는 물론 서로 다른 기술을 보유한 제약·바이오 기업 간의 협업도 망설이지 않고 있죠. 특히 IT 기업이 갖춘 역량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제약·바이오기업이 큰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신약 발굴’ 분야는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으로 꼽힙니다.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상용화하면 수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시간·비용이 상당하죠. 수천억원의 개발비를 들여도 결국 개발에 실패한다면 이 비용은 대부분 손실로 처리되기도 하고요. 오픈이노베이션은 이런 비용을 대폭 낮춰 기업의 부담감을 줄이면서도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일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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